주인 없는 도시로 가는 대전

[김학용 칼럼]

김학용 주필 2017.07.28 10:22:14

충남도의 시군(市郡) 주민과 대전시의 구(區) 주민 사이에는 다른 점이 있다. 시군 주민은 자기 지역을 ‘내 동네’ ‘내 고향’으로 여기지만 구민들은 대체로 그렇지 않다. 시군 주민들에겐 지역 정체성이 있으나 구민들에겐 그게 없다. 시군민들에겐 지역 연대감이 있고 대도시 구민들에겐 연대감이 없다.

시군 주민들은 ‘우리 군’ ‘우리 시’의 문제까지 관심이 많지만 구민들은 자신의 이해에만 관심이 있을 뿐 ‘우리 구’의 문제에는 무관심한 편이다. 충남도청을 대전에서 충남으로 옮길 때 각 시군들은 ‘우리 지역으로 와야 한다’며 양보 없는 유치전을 벌였다. 반면 정부3청사가 대전에 내려올 때 ‘우리 구로 와야 한다’는 주장은 없었다. 대전은 대전 전체가 한 공동체다.

대전과 충남을 합한 ‘대전-충남’도 하나의 지역 공동체다. 세종시가 따로 분리되었으니 ‘대전-충남-세종’을 한 공동체로 볼 수 있다. 충북까지 합치면 ‘충청권’이 한 공동체가 된다. 충청권은 영남권 호남권과 이름을 나란히 해온 지역이다. 그런데 ‘충청권’은 물론이고 ‘대전-충남 공동체’까지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충남의 대표 대학’ 위상 잃었다는 충남대

얼마 전 디트뉴스 자문위원회에서 육동일 충남대 교수는 충남도에 특강 갔다가 들었던 얘기를 하면서 비관적인 사실을 전했다. 요지는 이렇다. “충남 도민들은 충남대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다. 예전에는 충남에서 우수한 학생이 충대로 왔는데 이제는 안 온다. 천안이나 수도권으로 간다. 충남에선 충남대를 충남의 대표대학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충남도에서 활동하는 충남대 교수가 없다.”

부산대나 전남대의 경우 지역 사정은 대전 충남과 비슷해도 충남대 같은 처지는 아니라고 한다. 부산대는 여전히 부산 경남권의 대표 대학이고, 전남대는 광주 전남의 대표 대학이다. 충대는 대전의 대표 대학일 수는 있어도 충남까지 대표하지는 못하는 처지다. 충남도민들이 세운 대학인 데도 지역에서조차 대표 대학의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대전-충남’이라는 지역 공동체가 붕괴되어 가고 있는 것이 근본 원인 아닌가 한다. 충북도지사는 ‘영충호(영남-충청-호남)’라는 말로 충청권 공동체의 부활을 주창하였다. 그러나 20~30년 전까지도 ‘충남’이란 울타리 안에 한 솥밥을 먹던 대전-충남조차 서로 남남이 되어 가고 있다.

거리감 커지는 대전과 충남

대전이 1989년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충남에서 분리되고, 2012년 충남도청마저 대전을 떠나 내포로 이전해가면서 대전과 충남의 거리감은 더 커졌다. 한때는 대전시가 중심이 돼 충남북의 인근 시군과 함께 행정 교류를 꾀하는 모임도 운영했다. 이젠 그런 것조차 없어졌다. 대전시장 충남지사 충북지사 세종시장이 함께 모이는 기구가 있긴 하지만 정치적 제스처가 필요한 경우에만 활용되는 형식적 모임이다.

대전 충남은 행정기관끼리도 주민들끼리도 서로 멀어지고 있다. 충남대가 더 이상 ‘충남의 대학’이 못되는 것은 충남도민들의 대전에 대한 거리감을 말해주는 것일 수 있다. 육 교수가 들은 내용이 얼마나 객관적이냐 하는 문제는 있을 수 있지만 대전과 충남이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잘못 들은 얘기는 아닐 것이다.

‘대전-충남’ 공동체는 말할 것도 없고, ‘대전’ 공동체 스스로도 위험에 빠져 있는 듯하다. 이은권 의원이 “장차관 100명 중 대전 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는 통계를 내놨을 때, ‘대전 0명’이란 사실보다 이에 대한 대전의 반응이 더 놀라웠다. ‘대전 장차관 0’이란 보도자료에도 지역은 조용했다.

장차관 인사가 발표될 때마다 우리 지역 출신이 몇인지 따지는 게 좀스럽게 보일 수 있다. ‘꼭 충청도 사람이 장관이 돼야 하냐?’며 대범하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적어도 대전 충남은 그럴 상황은 아니다. 이런 홀대에도 무반응에 가까운 것은 대전이란 지역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생기는 자포자기나 무관심이 아닌가 한다.

주인 없는 도시가 발전할 수 있을까?

지역 정체성으로 보면 우리나라 수도권은, 주인은 없고 객들만 모여 사는 지역처럼 보인다. 수도권 사람들에겐 대체로 ‘내 집’은 있지만 ‘우리 동네’ ‘우리 시’ ‘우리 도’가 없다. 내 집값 오르고 교통 편리하고 주변에 괜찮은 학교가 있으면 된다. 자본과 인구가 몰리므로 지역 정체성이 부족해도 지역은 발전할 수 있다.

대전 충남은 다르다. 특히 대전은 자본도 안 들어오고 이젠 인구까지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역 정체성조차 잃어가며 수도권을 닮아가고 있다. 주인들은 주인 노릇을 포기하고 객들만 떠도는 도시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다. 회사든 도시든 주인 없으면 먼저 해먹는 사람이 임자다. 언제부턴가 대전은 그런 모습들만 비치고 있다. 이런 도시가 앞으로도 발전하면서 집값이 오르고 일자리가 늘어나길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일이다.

작은 마을부터 읍면, 시군구, 시도, 지역(충청권 등), 국가 같은 지역 공동체가 있다. 유럽은 국가 단위를 넘어서는 EU라는 공동체까지 만들었다. 우리가 일본과 축구경기 때 목이 터져라 하는 응원은 ‘우리 대한민국’이란 공동체 정신에서 나온다. 그건 지역 이기주의가 아니라 건강한 공동체 정신이다. 충청에는 ‘우리 충청’도 ‘우리 대전’도 ‘우리 충남’도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다.

문재인정부 들어 지방분권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안희정 지사는 인구 500만 정도의 광역지방정부를 제안하고 있다. 이런 안이 반영된다면 ‘충청권 공동체’가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남남이 되어 가는 충청권에 하나의 지방정부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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