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없다는 믿음’ 믿을 만한가

[김학용 칼럼] 북미 전쟁론, 무감각증의 원인

김학용 주필 2017.08.11 17:32:47

우리가 북미 간 전쟁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지금 전쟁은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전쟁에 돌입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초래될 수 있다. 북한 핵무기가 전쟁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으나 오히려 핵무기 때문에 전쟁이 어렵다는 논리다.

미국-북한 전쟁이 어렵다는 합리적 근거들

둘째는 북 미 모두 전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란 점이다. 전쟁이 발발하려면 어느 한쪽은 방아쇠를 당겨야 되는데 북 미 어느 쪽도 실제로 먼저 방아쇠를 당길 생각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 분야 전문가인 충대 교수도 “북한과 미국 모두 목적은 다른 데 있지 전쟁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북한이 방아쇠를 당기면 북은 곧바로 초토화될 것이다. 미국의 가공할 공격력을 막아낼 수 없다. 전면전으로 가는 순간 김정은 정권은 종말을 고한다. 북이 전쟁을 불사하는 것은 총부리를 자신을 향해 겨누는 것과 같다. 김정은 정권이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북에서 먼저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국도 먼저 전쟁을 시작하기는 어려운 입장이다. 미국이 최강국이라고 해도 ‘뒷감당이 불가능한,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에 대해선 자신할 수 없다. 북의 핵공격 능력을 무력화시키는 ‘예방 전쟁’혹은 ‘예방 타격’이란 명분의 군사작전이 거론되지만 이 또한 현실적으론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정말 우리가 이렇게 태평해도 되는가?

그러나 북한은 미국 땅 괌을 조준하는 ‘포위 사격’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고, 미 대통령은 장거리 전략 폭격기로 북한 미사일 기지를 선제 타격하는 구체적 작전 계획을 마련했다는 보도도 나와 있다. 양쪽의 ‘강 대 강 전술’이 계속되면서 외국에선 한반도가 곧 전장의 포화 속으로 들어가는 나라로 비쳐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미국 증시의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외국에 가족을 둔 집안에는 안부를 묻는 전화도 걸려온다고 한다.

당사자인 우리에겐 위기감이 없다. 미국 언론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 우리 국민들 모습을 다루며 “내 생전에는 전쟁이 날 것이라고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는 우리 대학생들의 반응을 전하고 있다. 전쟁에 대한 심드렁한 분위기가 한국 증시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도 보도하고 있다. 대학생의 반응과 무반응 증시는 많은 국민들의 생각일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태평해도 되는가 하는 점은 의문이다. 첫째는 전쟁이 합리적 판단의 결과로만 행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양쪽이 싸울 이유가 없는데 싸우는 법은 없지만 싸워야 할 이유가 있는 데도 차마 싸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전쟁은 수없이 많다.

지금은 ‘핵전쟁 가능성’때문에 전쟁이 억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발성’은 합리적 판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가령 북한은 괌 주변에 쏘겠다고 공언했으나 미국 본토인 괌 안에 떨어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전쟁 무감각증, 북풍론 학습이 원인일 수도

둘째는 전쟁 가능성에 대한 우리 무감각증의 근원에 대한 문제다. 우리에게 전쟁 문제는 언제부턴가 ‘정치 문제’로 들어와 있다. 선거 때마다 이른바 북풍이니 색깔론이니 하는 논란이 벌어졌고 국민들은 전쟁을 들먹이는 것이 선거용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이든 북이든 남북 관계는 선거의 도구로 이용된 경우가 많다.

이제 국민들은 ‘전쟁’이란 말이 나와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우리 국민에게 ‘전쟁’이란 말은 선거용의 가짜 뉴스에 가깝다. 또 지난 수십 년 간 북핵 문제로 위기감이 고조될 때마다 적잖이 긴장도 했으나 북의 벼랑끝 전술로 끝났다. 국민들은 ‘전쟁론’이 정치용어라는 점을 학습하고 북의 벼랑끝 전술 경험을 계속하면서 전쟁에 대해 초연하고 무감각해졌다.

그렇다면 우리가 확신하는 ‘전쟁 불가론’은 과연 믿을 만한 것일까? 우리가 안에서 배우고 경험한 ‘정치’만 가지고 전쟁을 이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의 지정학적 처지를 보면 그럴 입장은 못된다. 우리는 4대강국이 부딪치는 접경지대 안에 있다. 4강의 갈등은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태풍의 눈은 고요하다. 그러나 그 눈은 고정돼 있지 않다. 태풍이 움직여 이동한다면 그 자리는 태풍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4강의 한 가운데 있다는 점이 오히려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고요함이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세월호 희생자들은 육중한 배가 기울어 침몰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비극은 발생했다. 지금 한반도라는 배는 안전할까? 배 밖의 사람들은 안부를 물어오는데 안에서는 “사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세월호 비극은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도록 적폐를 방치하다가 일어났고 사고 대처요령에 대해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를 키웠다.

한반도라는 배, 밖에선 걱정하는데 안에선 태평

전쟁론을 과장하여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경제지표가 곤두박질치도록 하는 건 우리가 질리도록 보아온 악습이다. 그러나 그런 폐습 때문에 그 위험성까지 간과한다면 치명적인 무지요 실수다. 우리 무감각의 근원을 생각해보면 생각만큼 안전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전쟁은 수만 분의 일의 확률에도 대비해야 한다. 국가와 국민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다. 우리는 지금 불과 20~30년의 경험으로, 혹은 북풍론 등에 의해 굴절된 시각 때문에 전쟁의 위험성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위기감이 고조될 때마다 우리는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여는 게 전부다. 과거엔 그런 회의가 열리면 국민들이 조금은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봤다. 이제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여러 회의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정부도 지방자치단체도 국민들도 너무 무감각하다. 정부가 조용하니까 국민들은 태평하고, 국민들이 안심하니까 정부도 손을 놓고 있다.

위험에 처해 있어도 자신의 주변에서 반응이 없으면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 안전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실제로 안전한가를 생각하고 알아봐야 한다. 우리에게 ‘북미 전쟁론’은 양치기 소년처럼 되어 있다. 늑대는 끝내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늑대가 없는 것인지 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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