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과 평화' 베트남을 가다

[디트뉴스 베트남 보고③] 류재민 기자의 '호치민 3박5일 여행기'

류재민 기자 2017.09.13 16:41:37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주)청암 지원으로 디트뉴스24 임직원과 청암 장학생 등 20여명이 베트남 호치민과 붕따우 일대를 다녀왔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본 호치민 시내 전경 모습.


‘신짜오 베트남(Xin chào Vietnam, 안녕하세요 베트남)’

디트뉴스24 임직원과 청암 장학재단 장학생 등 20여명이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베트남 호치민과 붕따우 일대를 다녀왔습니다. 우리와 같은 아시아권에 속하는 나라에 3박 5일을 머무는 동안 저는 우리와 다름 속에서 또 같음을 발견했습니다.

무엇보다 베트남은 우리와 기후와 언어를 비롯해 정치와 경제 구조 등 전반적인 체제가 다릅니다. 어찌 보면 참 무질서해 보이기도 합니다. 첫날 호치민 공항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오토바이 무리인데요. 차 사이를 비집고 정신없이 지나는 오토바이들에 어지럼증이 들 정도였답니다. 베트남은 전체 인구가 1억 명이 넘고, 면적은 한국의 3배 정도라고 합니다.

오토바이 천국, '무질서 속 질서'를 보다

▲베트남의 상징과도 같은 오토바이들. 1억명이 넘는 인구에 6천만대 이상이 도로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전체 오토바이는 6000만 대(등록 기준)에 이른다고 하니 그 정도가 얼마일지 짐작이 될까요? 직접 다녀온 분들은 공감할 겁니다. 횡단보도만 그려져 있지 신호등은 좀체 찾아볼 수 없습니다. 차와 오토바이, 사람들이 뒤섞여 그야말로 ‘무법천지’를 방불케 했습니다.

어떤 오토바이는 인도 위를 곡예 하듯 달리고, 역주행도 서슴지 않습니다. 버스 창밖으로 내다본 오토바이들은 언제 사고가 날지 항상 아슬아슬합니다. 오토바이 한 대에 어른·아이 합해 5명까지 탄 광경도 봤습니다. 그런데 사고는 거의 나지 않는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바꿔 말하면 무질서 속에 나름의 질서가 있다는 얘기이겠지요.

베트남은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입니다. 공산당이 모든 분야를 관리하고 통제합니다. 다만, 경제 분야만큼은 개방화를 받아들여 발전의 속도를 내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모든 토지가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개발은 일사천리로 착착 진행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국가가 토지를 매매하지 않기 때문에 외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도 지니고 있습니다.

통제와 자유가 공존하는 땅, 빈부의 차도 커

▲통일 전 남 베트남 대통령궁. 하노이로 수도가 정해지면서 현재는 관광용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 빈곤과 가난의 모습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차량 소유자는 부유층에 속하고, 오토바이 소유자는 서민으로 보면 된답니다. 도심 외곽은 마치 30~40년 전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소가 농사를 짓고, 다 쓰러져 가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노상에서 음식과 잡화를 팔아 연명하는 사람들까지.

그런데 말이죠. 베트남이 우리보다 잘 살았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 아세요? 한국전쟁 당시 먹을 것이 없던 우리나라에 베트남은 ‘안남미(安南米, ‘安南’은 중국인이 베트남을 가리켜 부른 명칭)’라는 쌀을 지원했습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주린 배를 채우며 살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와 베트남의 경제는 불과 60여년 만에 완전히 역전됐습니다. 우리에게 ‘월남전’으로 잘 알려진 ‘베트남 전쟁(1960~1975)’이 결정적 계기였지요.

베트남 전쟁은 1960년 결성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이 베트남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위해 북(北) 베트남 지원 아래 남(南) 베트남 정부와 이들을 돕던 미국과 벌인 전쟁입니다. ‘한국전쟁’과 양상이 매우 흡사합니다.

오랜 전쟁이 남긴 흔적과 고통의 '대물림'

▲호치민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베트남 전쟁 당시 종군기자들이 찍은 고엽제 살포 장면과 피해자들 사진. 맹호부대와 백마부대 등 한국 파병부대 마크도 볼 수 있습니다.

15년에 걸친 전쟁은 미군이 백기를 들며 북 베트남의 승리로 끝났고, 이후 공산당 집권이 시작됐습니다. 남 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은 북 베트남 주석이자 통일 베트남의 주석인 호치민의 이름을 딴 ‘호치민’으로 지명이 바뀌었습니다.

미국 요청에 월남에 군인을 파병한 이유로 우리도 베트남과의 교류가 한동안 단절됐습니다. 다행히 지난 1992년 북방외교 바람과 함께 재(再) 수교가 이루어져 올해 양국 재 수교 25주년을 맞았습니다.

프랑스의 오랜 식민지였던 베트남은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의 지배를 받기도 했습니다. 언어와 문화는 중국의 영향을 받기도 했고요. 베트남 여성이 착용하는 전통의상 ‘아오자이(aosai’)가 중국의 ‘치파오(qípáo)’와 비슷한 것처럼 말이에요. 그렇게 보면 오랜 세월 주변 열강의 침입과 속박을 받았던 우리의 과거 역사와도 유사합니다.

언어는 4성조(聲調)의 중국어보다 어렵고 복잡한 6성조로, 전 세계에서 베트남어가 가장 배우기 어렵다고 합니다. 중국의 영향으로 한자를 차용한 말도 많습니다. 쉬운 예로 베트남어로 ‘신감언(Xin cảm ơn)’은 ‘고맙습니다’는 뜻인데요. 여기서 ‘신(Xin)’은 일본어의 ‘오(お)’와 같은 겸양어이고, ‘감(cảm)’은 ‘감사할 감(感)’, ‘언(ơn)’은 ‘말씀 언(言)에서 왔다고 합니다.

호치민 시가지 한편에는 전쟁 종군기자들이 베트남 전쟁 당시 찍은 사진들과 포탄을 비롯한 각종 전쟁 무기 등이 전시된 전쟁기념관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흔을 만났습니다. 바로 고엽제 피해자들입니다.

전쟁 때 미군이 비행기를 이용해 다량으로 살포한 고엽제는 대(代)를 이어 유전되면서 기형아를 출산하는 등 비극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파월 참전용사와 가족들이 고엽제 피해에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미국이 보다 책임의식을 갖고 보상 문제에 있어 대승적 결단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한반도 안보 위기..전쟁 억제·평화 유지 위한 국가 역할 필요

▲디트뉴스24 임직원 기념 촬영 모습.

최근 북한의 계속된 미사일 발사와 6차 핵실험 등으로 한반도는 불안한 국내외 정세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 12일 북한에 들어가는 유류의 30%를 차단하는 내용의 새 대북 제재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전술 핵 도입을 놓고 옥신각신 중입니다.

작금의 안보 위기 속에서 국가의 역할은 국민을 전쟁의 공포와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독자적 기준을 세워 운전대를 확실히 잡고, 적극적인 외교 활동을 통해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지속하는 노력을 해나가야 합니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니까요.

타산지석(他山之石)은 굳이 선진지가 아니어도 충분했습니다. 우리와 ‘다른 듯 닮은’ 베트남에서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직시하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동력을 얻기에 더할 나위 없었던 여정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을 지원해 준 (주)청암 이언구 회장님께 지면을 통해 감사 인사를 올리며, 동고동락(同苦同樂)한 <디트뉴스> 임직원들 모두 좋은 고생하셨습니다. 

(주)청암은 <디트뉴스> 모기업으로 '특정 기업의 후원'에 따른 취재지원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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